클레이 애니메이션 장인
‘아드만 스튜디오’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치킨런>의 속편이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는데요.

‘너겟의 탄생’이라는 무섭게 입맛도는 부제로
또 한번 닭들의 반란을 보여줬습니다.

<치킨런>은 ‘자유’에 대해 말하는 영화였죠

2편에서도 비슷하게
‘갇혀있는 현대인’을 말한다고 느꼈는데요

자신들이 갇혀있는지조차 모르는,
세뇌에 빠진 펀랜드 양계장의 닭들처럼
우리도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져
자유를 빼앗긴 줄도 모르고 있다 말하죠.

저는 <치킨런>이 현대인을 가둔 감옥으로
‘디지털 세계’를 지목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즐길거리가 끝없이 솟아나는 인터넷에서
위험이 없는 가짜 모험을 하고
방 안에서 세상을 내다보면서
자유롭고 즐겁다고 착각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죠.

극 중 록키가 몰리에게 가르쳐 준 ‘팝콘’은
이런 안락한 기분을 주는 ‘컨텐츠’를 의미합니다.
모든 근심을 잊게 하는 도파민 자극제죠.

하지만 영화 후반에 몰리는
아빠가 가르쳐준 팝콘을 이용해
양계장을 탈출할 방법을 찾아내는데요

‘컨텐츠’가 가진 힘을
우리의 눈을 가리는데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자유를 향한 용기를 주는데 쓰라 말하고 있죠.

1편의 닭들은 물리적인 감옥에 갇혀 있었고
2편의 닭들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있었습니다.

무엇이 이 매트릭스에서 닭들을 깨어나게 했을까요?



영화는 록키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1편의 내용을 요약해 관객들에게,
그리고 아직 달걀인 몰리에게 들려주죠

주인공 진저의 닭 공동체는
트위디의 양계장에서 도망친 후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딸 몰리가 육지로 나가고 싶어하고,
섬 근처에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걸 목격하자
잊고 있던 공포가 되살아나고,
섬을 숨기는 결정을 하게 되는데요

이후 몰리를 구하러 나간 진저는
목걸이에 세뇌된 펀랜드의 닭들을 목격합니다.
그 순간, 자신들도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져
스스로 갇혀 살았다는 걸 깨닫죠.

파이나 너겟이 되는 삶은 아니지만
결국엔 숨어사는 삶에 불과했습니다.

1편에서는 생존을 위해 자유를 찾던 닭들이
2편에서는 생존이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말하고 있죠


전작의 모티브는 <대탈주>라는 영화였습니다.
2차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던
76명의 연합군 포로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요

그래서 1편의 양계장은 우중충한 톤을 중심으로
나치독일의 수용소 분위기를 풍깁니다.
공군 마스코트였던 파울러까지
이 닭들은 ‘전쟁세대’로 느껴지죠

그래서 ‘요즘세대’를 표현하는 몰리는
‘전후 세대’로 보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
안락한 시대에 태어난 닭이죠.

진저는 록키에게 
‘우리는 모두 겪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겪지 않아도 된다’
고 말하며 과거를 지난날로 치워둡니다.

목숨을 위협받는 억압이 없다는 건
삶이 훨씬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이죠
하지만 진저는 몰리에게 너무 많은 걸 숨깁니다.

몰리가 가출해서 프리즐을 만난 장면을 보면
차에 치일뻔한 몰리에게 ‘저세상’ 가고 싶냐고 하자
그녀는 ‘저세상이 뭔데?’ 라고 되묻죠

물론 펭귄도 모르고 발톱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그녀가 세상을 너무 모른다는 겁니다.

도처에 위험이 있고, 그것을 극복해내야 하는
‘생존’에 문제가 있는 상태죠.

진저는 몰리가 위험에 처하느니
차라리 알 속에 있는게 더 낫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과보호하는 부모의 모습을 넘어서
삶의 자유를 빼앗는 행동이죠.

결국 이런 무방비 상태의 몰리는
섬 밖으로 나가 큰 위기에 처합니다.

두 어린닭은 왜
스스로 양계장에 들어갈까요?



펀랜드 트럭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바구니에 앉아있는 행복한 표정의 닭이죠
섬뜩하게 닭 머리가 박혀있던 
1편의 파이그림과는 대조적인데요

펀랜드의 전략은 닭을 속이는 겁니다.
바구니에 앉으면 안락하고 행복해진다는,
‘마케팅’을 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행복할 수 있다’는 유혹의 끝은
누군가의 ‘상품’이 되는 결말뿐입니다.
 
마케팅에 속는 현대인을 풍자할 때, 
과거의 노예에 비교하곤 하죠
신분과 물리적인 족쇄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상징적인 족쇄에 묶여 있다 묘사하는데요.


심지어는 가축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가축에게는 적당히 먹이를 주고 생존하게 해주지만
그 진짜 목적은 노동력과 상품을 뽑아내고
계속해서 새끼를 쳐 주인의 배를 불리는 것이죠

그러나 가축은 자신의 최후가 너겟이라는 
끔찍한 사실도 모릅니다.
행복하게 살았다고 세뇌당하니까요.

저는 ‘펀랜드 양계장’을 보며
영화 <아일랜드>가 떠올랐습니다.

<아일랜드>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인공장기를 판매하는 첨단 바이오회사가
알고보니 복제인간들을 가둬서 키운다는 이야기죠.

복제인간들은 ‘아일랜드’라는 파라다이스에 가기를 기다립니다.
추첨이 되면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즐겁게 떠나지만
사실은 장기가 적출되어 죽으러 가는 것이죠

펀랜드 양계장은 21세기의 기술사회를 보여줍니다.
첨단 기술이 가득해 보이는 이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탈출보다 침입이 더 어렵죠.

견고하게 가둬둘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들어온 닭은 어차피 
스스로 나갈 생각을 안 하니까요

이 시리즈에서 양계장은
체제와 권력을 상징합니다.

1편의 양계장은 무서운 개들이 경비를 서고
철조망과 담벼락이 둘러싼 물리적인 체제였죠

2편의 양계장은 알록달록하고 화려합니다.
깔끔한 외관과 첨단 시스템을 갖췄죠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이름’과 ‘이미지’를 가졌다는 건데요

‘펀랜드’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기호’와 ‘상징’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죠.



이 영화는 사진을 이어 붙이는,
스톱모션 방식의 애니메이션입니다.
3D 애니메이션이 대세인 요즘 세상에
찾아보기 어려운 고전적인 작품이죠

아드만 스튜디오는 점토인형을 이용한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대표적인 회사입니다.

 300명의 인원이 500여개의 인형을 
4년 넘게 걸려 수작업으로 만들고
하루를 꼬박 작업해서 몇 초의 분량을 만드는,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회사인데요

그러나 이들이 과거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다. 
시대에 발맞춰 넷플릭스와 협업중이죠
<월레스와 그로밋> 6편도 넷플릭스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제가 앞서 말한 ‘디지털 세계’에 대한 해석은
기술발전을 거부하는 자세를 말한 것은 아닌데요
이를 활용하는 ‘자세’에 대한 해석이죠

비단 컨텐츠를 만드는 자세뿐만 아니라.
소비하는 태도에 대한 우려도 담겨 있다고 봅니다. 

가볍고 쉬운 내용을 빠르게 소비하는 성향이
이에 부응하는 컨텐츠를 양산하게 만든다는 거죠

그 결과, 깊은 고민이나 이해가 없어도 되는
쿨하고 펀한 것들이 인터넷을 채우고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옥수수 사료를 먹으며
생각없이 도파민에 젖어있는 닭들과 같죠.

‘옥수수’는 딱딱한 재료입니다.
펀랜드의 사료는 그라인더로 갈아서
색깔과 맛을 입힌 것으로 보이는데요

나중에 진저와 일행들은
이 옥수수가 담긴 저장고에 갇힙니다.
그라인더가 작동해 모두 죽을 위기에 처하죠.

그런데 그 순간 록키가 
옥수수를 팝콘으로 바꾸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폭죽에 불을 붙인 건 창의력을 물려받은 ‘몰리’였죠

기술의 발전은,
컨텐츠를 수용하기만 하던 위치의 존재들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줬습니다.

영화는 이런 세상의 어린 세대에게
‘팝콘’을 만들어 내라고 권장하고 있죠

몰리의 팝콘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요?



목걸이가 채워진 닭들은 
‘두려움’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용감한’ 것은 아니죠.

용감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느껴야 합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상태죠

이들은 팝콘의 재료인 옥수수만 받아 먹으며
정신이 마비된 상태로 너겟이 되길 기다릴뿐인데요

록키가 만들어준 팝콘은 과거의 방식입니다.
그는 몰리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즐거움’을 주기 위해 팝콘을 만들었지만

몰리는 그 과정에서 가르침을 얻고
삶을 헤쳐나가는 지혜로 활용했죠.


동서양 어디에서나 어른들은
‘옛날 옛적에..’라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인류가 즐겨온 컨텐츠는 대부분
지난 시절의 지혜를 담고 있었죠.

아빠에게 배운 팝콘은 모두를 구해냈고
이를 통해 진저는 두려움을 이겨냅니다.
몰리와 함께 되돌아가 프리즐을 구해내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치킨 게릴라가 되죠.

저는 영화를 보고,
몰리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고 편집해 컨텐츠를 만들 수 있죠.
하루에도 수십만개의 숏폼 컨텐츠가 쏟아져 나옵니다.

하지만 이 좋은 기술로
모두가 멍때리는 영상만 만들고
서로를 세뇌하는 세상이 되고 있죠.


진저일당이 침투하는 과정에서
잠시 ‘아이패드’를 이용한 농담이 나옵니다.
이들의 보안 시스템이 대단한 기술인 척 하지만
알고보니 눈을 돋보기로 확대해서
사람이 직접 사진과 비교하는 방식이었죠.

첨단기술이 대단한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 많은 것들이 오래된 것을 편하게 바꿔
디지털로 옮겨담은 것인데요

그걸 광고하기 위해 내세우는 ‘창의력’과 ‘생산성’은
기존의 도구들로도 가능한 것들이 많습니다.

많은 태블릿 이용자들이 경험하듯이
처음에만 이것 저것 좀 건드려보고, 
결국엔 넷플릭스나 유튜브 머신이 되기 쉽죠.

중요한 것은 
어떤 브랜드의 무슨 기계를 가지는지가 아니라
내가 그것으로 무엇을 해내느냐 아닐까요

<치킨런>은 1편과 2편 모두
핵심적으로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느꼈습니다.

‘억압’을 깨닫고, ‘함께’ 탈출해야 한다는 거죠.

주어진 안락한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유를 향한 날개짓을 해야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자유롭기 위해서
오늘도 고민하며 컨텐츠를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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