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헤어진 연인의 사진이나 편지,
선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나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옛 연인의 기억을 지우는 이야기를
몽환적인 연출로 풀어낸 로맨스 명작입니다.

이별 후 흔적을 지우는 일반적인 행동에
감상적인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꾸려냈죠

저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사랑의 순수성’이라 느꼈는데요

현실에선 많은 사람들이 부정하는 말이죠.

때문에 주인공 커플이 싸우는 모습은
순수하기는 커녕, 너무도 평범하고 너저분합니다.

관객들이 쉽게 공감하는 이 현실커플 모멘트는
흔한 연인들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는데요
감독은 이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커플에게서 
순수한 사랑을 찾고 있죠.

이 작품의 영어 원제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티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 입니다.

영화는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조엘의 뇌 속으로 깊이 들어가죠

그 안에 등장하는 ‘클레멘타인’은
기억의 공간에 반영된 ‘조엘의 마음’입니다.

조엘은 클렘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는 게 두려워서
그녀를 끌고 이 곳 저 곳을 도망다니죠.

여러분은 연인과 헤어진 후,
물건을 버린다고 마음이 버려지던가요?

조엘과 클렘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억을 지운다고,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죠.

‘티없는 마음’이란
물건과 뇌세포같은 물리적인 것이 닿을 수 없는
의식 깊은 곳의 ‘자아’를 의미합니다.

그 곳에는 ‘영원한 햇살’
지워지지 않는 사랑이 비추고 있죠.

그래서 기억을 지운 다음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일어난 조엘은 
영문도 모른채 ‘몬톡’을 향합니다.
가장 깊은 자아에 남아있는,
사랑이 시킨 행동이죠.



영화의 오프닝은
기억을 지운 다음날입니다.

처음보는 잠옷을 입고
자동차 문이 왜 망가졌는지 모르는
알 수 없는 의문들이 가득한 날이죠.

출근기차를 기다리던 조엘은
갑자기 반대편 플랫폼으로 건너가
몬톡행 열차를 탑니다.

그는 기억제거 시술의 마지막에
클렘과 몬톡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죠.

하지만 이는 조엘의 꿈이었습니다.
진짜로 클렘과 약속한 게 아니죠.
게다가 이 장면조차 기억에서 지워졌습니다.
그가 몬톡을 향하는 이유는
약속이나 기억이 아닌 거죠.

‘기억 너머의 의식’에는
여전히 클레멘타인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기억만 사라진 상태죠.

인간은 ‘공백’을 불편해합니다.
어떻게든 채워넣으려하죠.

하지만 조엘은 비어있다는 사실도 모르기에
왜 답답한지도 모른채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기억이 비어있는 시작점인
‘몬톡’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거죠.

해변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자꾸만 서로가 눈에 들어옵니다.
잃어버린 퍼즐조각이니까요

결국 둘은 서둘러 공백을 채우려는 듯
가장 강렬한 추억의 장소까지 방문합니다.
조엘도 평소와 다르게 적극적이죠.

다시 멀어지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메리가 보낸 녹음을 듣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그런데 클렘은 
녹음 테이프를 다 듣고도 조엘을 찾아가고
조엘은 떠나는 클렘을 붙잡았죠.

똑같은 이유로 싸워도 ‘괜찮다’라면서
둘은 다시 관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왜 그런 걸까요?



이 커플이 기억을 지우지 않았어도
다시 이어질 수 있었을까요?

조엘과 클렘은 정반대의 사람이죠
조용하고 소극적인 조엘과
충동적이고 적극적인 클렘

둘은 서로의 다른 점을 좋아했습니다.
나중에는 이 차이로 인해 다투게 되죠.

사람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관계는 왜 달라질까요?

우리는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인지할 때
‘나’를 인지하는 뇌의 부분과 
가까운 부분이 활성화 된다고 합니다.

가족, 친구, 연인같은 존재를
‘나’처럼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이들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내맘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서
더욱 화가 난다고 하는데요

서로의 다른점이 처음에는 신기했고
연인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매력이었지만
가까운 관계로 발전한 후에는, 
통제되지 않는 골치아픈 부분이 된 거죠.

상대방을 생각하는 내 ‘감정’이
그 사람의 외적인 요소들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결정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병원의 직원 패트릭과 스탠은
기억이 지워진 사람의 정보를 이용해서
관심을 얻고 연애를 시작하는데요

하지만 두 여자 모두
결국엔 자신이 원래 사랑했던 사람을 쫓고
두 남자는 외면받게 되죠

상대방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
이를 열심히 따라하지만
기억의 공백을 자극하는 불쾌함만 커질뿐
이들은 다시 원래 사랑을 찾아갑니다.

이처럼 영화는
사랑은 물리적인 것을 넘어서는,
순수한 근원을 가졌다 말하는데요

그럼에도 이 감정을 구체화하는 것이
‘기억’이라는 요소임을 잘 활용하고 있죠.

사랑을 반영한 기억의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져 있을까요?



기억제거 시술을 받는 조엘은 
클렘에 대한 기억들이 연결된 곳을 떠돕니다.
각자 다른 시간과 공간의 기억이
마치 하나의 사건처럼 이어져 있죠.

기억은 현실을 모아놓습니다.
실제 사건이 아닌, 재구성된 현실이죠

자의적으로 재생산된 기억은
결국 나의 무의식을 반영합니다.
조엘이 꿈에서 대화를 나누는 클렘은
진짜 클레멘타인이 아니라, 조엘 자신이죠.

앞서 말했듯이 두 사람의 싸움은
서로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내가 괴로운 나의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으려 했죠.

그래서 헤어지면 후련하겠거니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미워 죽겠는데 보고싶고
생각나면 또 괴롭죠.

그래서 클레멘타인은 기억을 지워버립니다.
기억이 괴롭다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연인에게 나를 투영했듯이
기억은 나의 마음을 투영했을뿐입니다.

여전히 괴로움의 원인인
‘나’와 ‘나의 마음’은 그대로죠.

상대에게서 나의 문제를 찾던 조엘은
꿈에서 연인의 모습을 한 자신과 대화합니다.

가장 부끄러운 기억들과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는
자아의 깊은 곳을 반영한 곳에 들어가서
자신의 문제들을 되짚어보죠.

이 과정은
조엘이 자아를 탐색하는 과정인 동시에
클레멘타인에게 진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연습과도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조엘의 꿈만 묘사하지만
클렘도 같은 과정을 겪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죠.

서로를 비난하는 테이프 녹음은
각자의 부끄러운 내면을 드러내는 첫 단계입니다.
지난날의 실수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과정이죠.

이로써 두 사람은
이 관계의 문제가 서로가 아닌
자신에게 있었음을 인정하고 새로 시작하게 됩니다.



각본을 쓴 찰리 카우프만은
<존 말코비치 되기>로 영화계에 데뷔했습니다.
이 때의 각본으로 각종 비평가상을 휩쓸었죠.

그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남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육체를 지배하는 ‘진짜 정신’
‘자아’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는데요

그 영화에 짧지만 중요하게 등장한 커플이 있습니다.
‘엘로이즈와 아벨라르’라는
중세 플라토닉 러브의 대명사 커플인데요

이 영화의 제목
‘티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이
이 두 사람에 대한 알렉산더 포프의 시에서 유래했죠

둘의 이야기를 간단히 말해보자면
촉망받는 신학자 아벨라르는
어린제자 엘로이즈와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여러 사건과 오해로 아벨라르는 거세당하고
두 사람은 멀리 떨어진 수녀원과 수도원으로 갈라지죠.

이후 둘은 평생 편지를 주고받으며
정신적인 사랑만 나누는 관계가 됩니다.
이 이야기가 후대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알렉산더 포프는 이들의 편지를 읽고 시를 남겼죠.

미셸 공드리 감독과 찰리 카우프만 작가는
이 커플의 이야기로 함께 작품을 만듭니다.

마음 깊은 곳에 순수한 사랑을 가진
두 사람의 영원한 햇살을 이야기하는 영화죠.

공드리 감독은 이후에
짐캐리와 또 함께 작업을 하게 되는데요
퍼펫쇼를 하는 어린이 프로 진행자의 이야기
<키딩>이라는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밝게 웃는 TV쇼의 얼굴 뒤에 감춰진
상처받고 고통에 빠진 내면을 다루는 작품이죠.

이 두사람의 작품들은 모두
인간이 존재하는 물질적인 세계와
이를 보여주는 외적인 모습이
결국 내면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해왔고
널리 알려진 주제라고 볼 수 있지만
이들의 표현력은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죠.

공드리와 카우프만의 작품은
현실을 공상세계처럼 표현하고
가상의 공간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내면과 외면의 경계를 허물고
물감이 섞인 듯 혼란스럽게 만들죠.

특히나 <이터널 선샤인>의 경우엔
영화의 분위기 마저 혼란스럽습니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지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인지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분간할 수 없도록 만들죠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엔딩은
두 사람이 결국 또 헤어지지는 않을지,
다시 기억을 지우러 가는 건 아닐지 걱정됩니다.

물론 현실세계에는 ‘라쿠나’ 같은 서비스는 없죠
다만 누구나 괴로운 기억은 가지고 있고
이를 지우거나 묻어버리려 애쓴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란
지울 수 없는 기억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쉽게 지울 수 있었다면
괴롭거나 신경쓰이지도 않을테니까요.

사랑의 문제도, 삶의 문제도
가장 근원적인 부분부터 돌아봐야겠다고 느낀
저는 영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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