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
<위시>가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지중해에 위치한 가상의 섬나라를 배경으로
마법에 담긴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클래식한 구성의 작품이었는데요

디즈니는 <위시>안에
무려 100여개의 오마주가 숨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화의 틀이 되는 화면비율부터가
1959년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같은
2.55:1의 비율로 제작되었죠.

저는 이 영화가
‘모든 사람이 별의 희망을 품고 있다’
라고 말한다 느꼈는데요


이번 작품의 최고 귀요미이자
상징적인 캐릭터는 별 ‘스타’죠.

미키를 닮은 하트모양의 얼굴형에
피노키오의 소원과 희망을 담은 이 캐릭터는
오랜시간 세상에 영감을 주려 했던
디즈니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월트 디즈니’ 한 사람의 꿈이
100년의 세월이 지나 지금의 모습이 된 것 처럼
누구나 마음에 품은 ‘소원’을 통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말하고 있죠.

영화는 아주 쉽고 빠른 전개를 가졌지만
각각의 캐릭터는 오랜 역사와 넓은 스펙트럼을 담아내
작품을 들여다 볼수록 깊고 풍부하게 느껴졌습니다.

먼저 주인공 ‘아샤’는
전통적인 디즈니 프린세스인 동시에
요정 대모의 정체성을 담아냈고
의적 로빈 훗의 성격도 보여줬죠

메인빌런 매그니피코왕은
자파, 말레피센트, 스카, 우르슬라 등
역대 디즈니 빌런들의 특징을 모아
고전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럼 영화 <위시>가
어떤 장면과 캐릭터들을 가져와
자신들의 100주년을 기념하는지 알아볼까요?



오프닝은 옛 디즈니 만화들처럼
커튼을 지나 동화책을 펼치며 시작합니다.

매그니피코왕이 로사스 왕국을 세우는 과정을
짧게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죠.

이어서 주인공 아샤의 가족이 등장하는데요
아샤의 할아버지 사비노는 100세 생일을 앞두고 있죠.

그는 ‘디즈니’를 상징하지만 
겸손하고 소박하게 연출됩니다.
오늘날 거대한 컨텐츠 공룡이 된 디즈니와는
겉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죠.

사비노는 다음 세대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예술을 하고 싶어합니다.
마지막에는 영감을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하죠.

디즈니의 정신과 자세가
오늘날 달성한 물질적 성과를 
목적으로 하지 않음을 표현합니다.

이어서 아샤의 친구들이 등장하는데요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에서 모티브를 얻은
그녀의 친구이자 주요 조력자들이죠.

쿠키를 굽는 달리아는 ‘박사’
김신영을 닮은 가보는 ‘심술이’
재채기를 하는 사이먼은 ‘재채기’
소리없이 나타나는 바지마는 ‘부끄럼’
재채기한 쿠키를 먹는 다리오는 ‘멍청이’
귀걸이를 한 짧은 머리의 할은 ‘행복이’
덩치 크고 기운 없는 사이먼은 ‘졸음이’

각자 오리지널 캐릭터의 첫 알파벳을 따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 들은 캐릭터가 많아서 
모든 인물이 충분히 조명받지는 못했죠
가장 많은 분량을 얻어낸 캐릭터는 졸음이 사이먼과
심술이 가보, 박사 달리아 였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자세를 보이던 심술이 가보는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순간에 
이 영화의 중요한 주제를 던지는데요


‘뛰어내리면 떨어지는 게 아니야’ 라면서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립니다.

영화 초반에 나온 매그니피코의 이야기는
실패와 좌절의 슬픔을 피하려는 자세를 보여주죠.
하지만 좌절을 피하려던 그의 소원 마법은 
결국 소원 자체를 빼앗아버리는 결과를 냅니다.

마법에 기대 소원을 이루려는 사람들은
두려움과 좌절의 가능성은 사라지지만
동시에 행복 역시 빼앗기죠

할아버지 사비노가 
다음 세대에 영감을 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아도
계속 음악을 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스스로 도전한다면 실패는 추락이 아니라
경험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매그니피코와 반대로, 
강력한 마법의 힘을 가진 ‘스타’는
소원을 들어주냐는 물음에 인상을 찌푸립니다.

그럼 별은 왜 내려왔고, 무슨 힘을 가졌을까요?

 



‘별’의 가장 깊은 모티브는
아주 오래된 작품 <피노키오>에서 옵니다.

피노키오는 별을 보며 
진짜 사람아이가 되고싶다 기도하죠.

하지만 푸른요정은 그의 소원을 
그냥 한 번에 들어주지 않습니다.
피노키오가 유혹에 빠져 실수를 하고
제페토 할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된 후에야
마법으로 겉모습을 바꿔주죠

엔딩의 푸른요정은
우리가 마법의 힘을 기억하게 만들었지만
진정한 마법은 마지막이 아니라
피노키오의 모험 과정에서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스타’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죠.
영화 마지막에 왕국의 모습이 변한 것처럼
소원을 이루기 위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와 다르게 매그니피코왕은
자신이 고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죠.

그의 행동은 <인어공주>의 빌런,
‘우르슬라’에서 왔다고 느꼈습니다.

문어를 모티브로 한 ‘우르슬라’는
사실 주인공 에리얼의 고모인, 왕족입니다.
디즈니의 빌런들은 높은 신분인 경우가 많죠

그녀는 에리얼에게 다리를 주는 대신, 목소리를 가져갑니다.
말하는 능력, ‘나를 표현하는 힘’을 빼앗아가죠.

매그니피코 역시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조건으로
소원이 무엇인지 기억할 수 없게 만듭니다.
국민들의 소원을 빼앗아가서, 스스로 이룰 수 없게 만들죠.

그는 행동만이 아니라
외적인 것도 여러 빌런을 닮았는데요

후반에 사용하는 초록색 지팡이와 빛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빌런 ‘말레피센트’와 닮았습니다.
‘초록색’은 늘 빌런의 주요 컬러죠.
빛이나는 초록색은 ‘독성’을 가진 느낌을 줍니다.

매그니피코는 초록색을 두르고
<라이온 킹>의 ‘스카’처럼 노래를 부르죠.

왕의 얼굴은 맹수 같기도 합니다.
빌런 사자 ‘스카’의 눈과 닮았고
알라딘의 ‘자파’와 닮은 수염을 가졌죠.

뿐만 아니라 그의 서재에는
<백설공주>의 빌런 ‘그림하일드’가 떠오르는
수상한 액체가 끓는 유리병과 ‘사과’가 놓여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빌런을 투영한 매그니피코 왕이지만
영화를 본 대중의 반응은 의외인데요

소원을 들어주는 그의 국가 시스템이
아샤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입체적인 캐릭터긴 하지만
빌런이 주인공보다 지지받는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매그니피코왕은 강한 ‘자기애’를 가졌죠
그의 성 안에는 그림하일드의 ‘거울’처럼 
반사되는 벽들이 등장합니다.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능력은
그의 독선적인 성격을 뒷받침하는데요
마법의 힘으로 ‘소원’을 통제해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죠.

로사스의 국민들과 관객들이
그의 통치방식에 쉽게 동의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행복한 선택이 정의다’
라는 ‘공리주의’가 바탕이죠.

개인의 행복을 모두 더한 것이
집단의 행복이 되기 때문에
공공의 행복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공평한 분배를 주장하게 되는데요


문제는 매그니피코의 정책이
행복을 분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소원’을 이루지 못해 좌절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원이 뭔지 기억하지 못하도록 만들죠.

검열을 통과한 소원만이 이뤄지도록 해서
불행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행복의 양을 늘리는 사람입니다.
 
극단적인 공리주의의 문제인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게되었죠.

그 결정권을 한 명의 개인이 가지게 되면서
로사스는 굉장히 무서운 형태의 독재국가가 된 셈입니다.

여기에 맞서는 젊은 혁명가 ‘아샤’는
숲 속에서 동물친구들을 만드는데요
1973년작 <로빈 훗>의 오마주가 여기서 등장합니다.

아샤를 돕는 커다란 곰의 이름은 ‘존’
로빈훗의 친구이자 일당의 유일한 일원인
곰 ‘리틀 존’에서 따온 캐릭터죠.

이에 어울리게 아샤의 계획은 ‘도둑질’입니다.
못된 왕의 돈을 훔쳐 나눠주던 의적 로빈훗처럼
국민들의 빼앗긴 소원을 되찾아주는 도둑이 되죠.

결국엔 아샤 역시
많은 이들의 행복을 원하는
‘공리주의’ 안에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손쉽게 뭔가를 이뤄주는 ‘마법’이기 때문에
매그니피코 왕의 손을 들어주는 현상이 나타나죠.

그러나 디즈니의 가치를 담은 아샤의 캐릭터는
마지막엔 ‘요정 대모’를 향해갑니다.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와 호박마차를 선물한 존재죠.

그녀의 마법은 대단하지만
12시라는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모든 걸 공짜로 주는 건 아닌 셈이죠.

왕자와의 결혼이라는 행운을 그냥 주지 않고
그걸 이뤄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겁니다.
기회를 빼앗은 계모와 언니들에게서 되찾아준 거죠.

마법이 모든 걸 해결해주길 바라는 건
인간이 언제나 바랬던 일이지만
디즈니는 항상 같은 주제를 말해왔습니다.

‘마법’은 도구가 되는 능력일뿐
실제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면
희생과 도전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많은 관객들이 꼽는 <위시>의 아쉬운 점은
급격한 전개와 캐릭터의 깊이가 아닐까 싶은데요

저는 이 영화가 이런 단순한 형태를 취한 것이
과거의 작품들을 불러오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오마주를 담기 위한 편의성이 아니라
옛 이야기들의 의미와 감동이 들어갈 자리가 필요했던 거죠.

100주년 작품이라는 특별함을
‘역대 최고의 작품’ 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수많은 이야기에 담겼던 꿈과 희망을 되새기는 것’
으로 두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쿠키영상에 나온 그 짧은 소절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었겠죠.


하늘의 ‘별’이 하필 아샤를 선택한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하는데요

아샤를 ‘로빈 훗’으로 만들어준 숲속 친구들은
<밤비>의 캐릭터들도 담아냅니다.

곰 리틀 존과 어깨동무하는 ‘밤비’는 물론이고
바닥을 두드리는 토끼도 등장하죠

이들은 ‘스타’의 반짝이 가루 덕분에
사람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버섯들도 이 가루 덕분에 말을 하며
겨울왕국의 ‘I love crazy’라는 대사를 따라하죠

하지만 정작 스타 자신은 말을 하지 못하는데요

이 설정은 <피터 팬>의 ‘팅커벨’과 같습니다.
요정의 말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어서
팅커벨의 말과 행동은 딸랑거리는 종소리로 들리죠.

말을 못하고, 반짝이를 뿌리며
빨간실과 함께하는 모습까지
‘스타’는 ‘팅커벨’의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아샤는 팅커벨이 찾아온 존재,
‘웬디 달링’ 또한 담고 있는 캐릭터죠.

<피터 팬>에서 웬디는 
곧 성년이 되는 생일을 앞두고
어른이 되기 싫어 피터팬과 네버랜드로 떠납니다.
아샤도 마찬가지로 ‘소원’을 바치는
18살 생일을 앞두고 있죠.


이 로사나 왕국은 마법을 쓰는 왕이 있지만
가만보면 매우 현실적인 세계입니다.
매그니피코의 마법덕인지 풍족한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잊은채 평범한 일을 하며
독재자의 결정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죠.

그런 로사나에 ‘스타’가 내려옵니다.
디즈니의 꿈과 희망을 담은 존재죠.

이 ‘팅커별’은
웬디를 네버랜드로 데려가는 대신
네버랜드를 이 곳으로 가져옵니다.

스타의 반짝이 가루는 
동물들이 말하고 물건들이 움직이게 만들죠.
로사나를 동화 속 세계로 만드는데요

왕의 서재에서 마법을 난사하자
마치 <미녀와 야수>의 가구들처럼
온갖 집기들이 살아 움직입니다.
마법에 걸린 펜이 종이에 미키 마우스를 그리는
재미난 장면도 연출되었죠.

이렇게 ‘스타’는 
웬디를 피터팬으로 만들고
로사나를 진짜 꿈과 마법의 세계로 만듭니다.

그리고 아샤만이 아니라
로사나의 모든 국민들,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이

가슴에 별을 품고 있으며
누구나 피터팬이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말하고 있죠.

영화 <위시>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새로운 스토리나
시선을 사로잡는 놀라운 디자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디즈니가 밟아온 길을
반짝이는 희망의 별가루로 덧칠해주는
뜻깊은 작품이었다 생각하는 저는 영사기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댓글로 남겨주세요
구독과 좋아요는 영사기의 소원입니다.
오늘도 긴 영상 시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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